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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아니고 현실로 다가옵니다.


'The State'에 입주한 이후 나에겐 산책이라는 아주 즐거운 취미가 하나 생겼다. 산책을 나이든 사람들의 소일거리정도로 생각했던 내가 산책예찬론자가 된 것은 순전히 'The State'때문이다. 처음엔 서쪽하늘에 물든 노을빛이 너무 아름다워서 저녁햇살을 받으며 바람이나 쐴겸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그곳에는 환상적인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햇살을 뿜어내고 있는 'The State'의 모습이 한순간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것이다. 'The State'의 유리창에 반사된 햇살이 사방팔방으로 쏟아지며 조잘거리는 모습이란... 혹여 광장 한가운데 있으면 좌우에 우뚝 선 건물에서 반사된 햇살이 온통 나를 향해 밀려드는 느낌이었다. 마치 빛의 축제에 온 주인공을 환영이라도 하듯이.


그이후, 나는 노을이 아름답게 지는 날이면 무작정 집을 나선다. 물론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유유자적 휘휘 걸으며, 때론 칸트라도 된듯 사색에 자기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햇살과 바람을 즐기기도 하며, 여러 광장에서 열리는 각종 이벤트나 전시등을 구경하기도 한다. 마침 'The State'주변에는 여러개의 멋진 광장과 걷는 즐거움을 느낄수 있는 보행도로가 잘 갖춰져 있어 산채그이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언젠가는 산책을 하다가 붉게 물드는 서쪽 하늘에 넋을 빼앗긴 적이 있었다. 유난히도 붉게 타오르는 그날의 노을은 정말이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기억나는가.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과 레트가 붉은 황혼을 배경으로 멋진 키스를 나누던 장면을. 그날, 눈앞에 펼쳐진 장관은 영화속의 배경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면 나도 금방 스칼렛이 될것처럼. 그날이후, 나는 노을빛에 물든 이 거리를 '스칼렛의 거리'라 부른다.



한때는 차가 없으면 밖에 못 나가는 줄 알았다. 쇼핑을 하든, 영화를 보러가든, 친구를 만나든간에... 하지만 'The State'는 나의 생활패턴도 바꾸고 있었다. 굳이 차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모든것을 해결할수 있는 곳이 'The State'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의 저녁시간과 주말은 매우 풍성해졌다. 쇼핑이나 영화를 보거 오가는데 허비하던 시간을 고스란히 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이용해서 다른 취미생활을 즐길수도 있고, 다른 일을 할수도 있게 되었다. 그동안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라틴댄스와 골프를 배우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The State'덕이다.



걷다보니 어느덧 플라톤 광장.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오벨리스크처럼 생긴 기둥이 원형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이곳에 서면, 때론 베드로광장에 와있는것같기도 하고, 때론 스톤 헨즈의 중앙에 서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살구꽃,벚꽃이 꽃샘바람이 눈꽃을 날린다. 봄은 내 어깨를 스치고 가건만 코끝은 바람의 쌀쌀함을 느낀다. 그 쌀쌀함을 떨치려고 근처 테이크 아웃점에서 커피를 한잔 사가지고 나오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애야, 나 지은이."
"어, 지은아. 왠일이니?"
"내일,친구들하고 너희집을 국빈방문하려고 하는데, 괜찮지?"
"국빈방문? 얘, 국빈방문은 아무나 하는 줄 아니? 하지만 너희들의 저엉이 갸륵해서 이번만 특별히 국빈방문의 예로 맞을 테니 그런줄 알아라."
이야기를 하다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국빈방문이란 우리가족이 'The State'로 이사 온 후부터 듣게 된 우스갯소리중의 하나다. 국빈방문의 영어표기가 'State Visit'인 까닭에 방문하는 손님마다 자신은 국빈자격으로 방문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손님이 국빈이라면 그들을 맞는 사람도 국빈의 지위에 있는 사람일 터. 그렇다면 나는 내 이름 그대로 영애란 말인가? 아니면 미래의 영부인?




아무튼 그런 국빈방문이 있는 날이면, 우리집 거실은 'A State Apartment' 즉 궁전등에 있는 화려한 의식용 방으로 변하고, 식탁에서는 공식만찬'A State Dinner'이 열린다. 때론 참석자들이 위풍당당한 태도로 'In Great State'외교적이 언사를 주고받기도 하는데, 그런 장난기 가득한 행동뒤에는 한바탕 웃음꽃이 피게 마련인다. 비록 말뿐인 국빈방문이지만, 그 즐거움만큼은 백악관이나 청와대의 주인들이 오히려 부러워할지도 모를 일이다. 'The State'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국빈이 된 듯한 이 기분. 'The State'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나저나 내일 친구들은 어떻게 대접한다?



어둠이 짙어지자 'The State'는 또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화려한 조명으로 갈아입은 모습은 마치 웅장한 자수정을 보는 느낌이다. 저 불빛 어디엔가 내 어머니가 계실 것이다. 요즘 슬로 푸드 운동의 전도사임을 자임하고 있는 어머니는 'The State'거주자들로 구성된 슬로푸드모임의 회장이기도 하다 아마 지금쯤이면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마치고, 회원들과 함께 전통요리를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The State'에는 주민들을 위한 회의공간이나 세미나실등이 잘 갖춰져 있어 각종 모임이 할성화되어 있는것도 한 특징이다. 덕분에 이웃간의 정도 새록새록 솟아난다. 친구들과 영화를 본다는 동생녀석도 저기 어디쯤에 있겠지 집으로 돌아갈때는 녀석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오늘 같은 날 동생에게 걸렸다가는 한달 용돈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릴테니.. 그러고 보면 요즘은 'The State'가 세상의 중심이 된 것같다. 내친구나 동생친구들 모두'The State'로만 몰려드니 말이다.


밤이 깊어지자 나만의 스칼렛 거리는 어둠속에서 오색불빛으로 빛나고 있다. 연말을 앞두고 거리조면을 새로 한 까닭에 오늘밤은 더욱 아름다운 것같다. 그 불빛속을 걸어가고 있는 이 순간,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바로 샹젤리제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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