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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이름 하나 바꿨을 뿐인데…  
 

[헤럴드생생뉴스   2006-05-01 10:36:46] 
 
 
서울 관악구청 이정배 계장은 관내 봉천ㆍ신림동 주민의 민원에 이골이 났다. 동네 이름을 바꾸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 계장은 “달동네 분위기가 풍기는 이름을 바꿔달라”는 요구를 10년 넘게 받고 있다. 이 계장은 “주민들이 동네 이름을 바꾸기 위해 집단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1995년 이후 지금까지 네 번째”라며 “재개발이 마무리된 지역 중심으로 이런 요구가 있지만 오래된 동 이름에 애착을 갖고 있는 주민이 반대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브랜드가 질과 가격을 결정하는 시대를 맞아 ‘빈티’가 나는 동네의 이름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과거의 낡은 이미지를 벗고 럭셔리한 이미지로 변신하기 위한 것이다. 이름을 바꾸면 땅값 상승 등 새로운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동명, 아파트명, 도로명 등을 교체해 달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명 ‘미아리 텍사스’ 같은 집창촌에 동명이 들어간 길음동도 사정은 비슷하다. 길음동 주민은 2005년 ‘미아리 텍사스’라는 용어를 못 쓰게 하자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성북구청 측은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지만 길음동ㆍ미아동 일대가 미아리 텍사스와 동일화되면서 지저분한 싸구려 동네로 취급받았다”면서 “그동안 동네 이름을 바꾸어 달라는 요구 때문에 몸살을 앓았는데, 최근 들어 뉴타운이 개발되고 집창촌 철거가 확정되면서 한숨 돌렸다”고 말했다. 

지하철역 이름도 예외는 아니다. 2005년 구로공단역이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가리봉역이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뀌었다. 과거의 낙후된 공단 이미지를 벗고, 실제로 IT업체가 많이 입주해 있는 지역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로동 주민 허모(남ㆍ52) 씨는 “벤처단지도 많이 짓고 동네가 실제로 개발된 것도 있지만 이름 덕을 보는 것도 있는 것 같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름 변경 요구가 가장 뜨거운 곳은 역시 아파트. 상당수 건설사가 몇 년 전부터 내놓은 ‘브랜드’ 아파트의 가격이 뛰자 특정 건설사가 과거에 지은 ‘무(無)브랜드’ 아파트 주민들이 브랜드를 달아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물론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1999년 들어선 서울 마포구 공덕동 ‘삼성1차 아파트’가 ‘삼성 래미안1차’로 이름을 바꾼 뒤 30평형의 경우 1000만~2000만원 정도 가격이 뛰었다는 게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주민들의 이름 변경 요청에 건설사의 대처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삼성물산의 ‘래미안’,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 등은 원칙적으로 브랜드 출시 이전 입주 아파트에 브랜드를 달아주지 않고 있다. 지은지 20~30년이 다 된 아파트까지 소급하면 이미지관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태영건설의 경우 ‘데시앙’을 내 놓은 2002년 이전에 지은 아파트 가운데 30%가량을 주민 요구에 따라 브랜드를 붙여줬다. 

네이밍연구소 이현석 대표는 “브랜드 등 모든 가치가 이름으로 표현되니까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이름의 영향력이 상당해 보이는 것”이라며 “아파트 동네 등 이름을 바꿔주면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충분히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오연주 기자(oh@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