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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End]서로 다른 해피엔드를 꿈꾸는 다섯 사람의 이야기
K
죽전역 Emart 5,470평… 신세계가 마음 먹고 내놓은 전략적 대형 마트다. 다른 점포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인테리어와 다양한 물품 배치를 한데다가, 다양한 편의 시설을 입점시켰다. 죽전 사거리가 그만큼 큰 시장을 만들 수 있는 지역인데다가 동종 업종간의 경쟁도 치열한 곳이기 때문이다. 2Km 반경 이내 월마트, 까르푸, 롯데마트 등 대형 점포가 포진 되어 있다.

일요일 오전 10시… Emart가 문을 열자, K가 스타벅스 커피숍에 나타났다. 썰렁한 Open 점포에 아직 히터를 가동하지 않은 겨울의 찬공기가 느껴진다. 뒤적뒤적… 지갑에서 한 가득 카드를 끄집어 낸다.

“할인카드 뭐 있어요?”

안경 쓴 아르바이트생이 힐끗 쳐다보더니 곧바로 대답해준다.

“할인되는 것은 없구요. L카드 내시면 한 Size 업그레이드 시켜드려요.”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는 노란 대봉투 속의 내용물들을 쏟아냈다. 동백 지도와 계약서, 인감증명서, 인감도장, 부동산명함, 인터넷에서 프린트한 부동산 정보도 몇 페이지 된다.

K는 오늘, 동백에 아파트를 한 채 계약하러 간다. 신도시… 그리고, 새 집. 4월로 입주가 바짝 다가선 새 아파트는 K에게 큰 희망이다. 3월이 되면 판교는 최소 300:1의 경쟁률을 나타낼 것이다. 그 경쟁률은 주변 집값을 들썩거리게 만들 것이고, K가 사는 아파트는 몇십프로 쉽게 오를 것이라 기대해본다.
"빨리 물건을 사야지...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올라갈꺼야.."

마지막으로 꼬깃꼬깃 접힌 봉투를 속 주머니에서 꺼내어 내용물을 테이블 위에 꺼내 놓으니, 몇 년간 차곡차곡 모아 놓은 계약금 4300만원이 들어있다.


H

오전 11시. 커피숍에 H가 Wife와 함께 들어왔다. Wife는 카푸치노, H는 모카커피를 시켰다. H는 1년 전쯤 죽전에 들어왔다. 2004년 11월 집을 산 지 얼마 안 되서 집값이 많이 오르는 바람에 큰 돈을 벌었다. 분양권 전매가 가능한 시점에 우연히 사게 된 B아파트는 판교 분양을 빌미로 짧은 순간에 두 배가 되었다. ‘이제 나도 중산층인가?’라는 생각에 1년을 허둥대고 만족하며 보냈다. Wife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이번 선택이 백번 옳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동백 신도시가 들어서는 것을 보니 욕심이 난다. 지난 번처럼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

H는 과감히 죽전 집을 팔고, 동백으로 옮길 예정이다. 몇 번 가본 동백은 산이 많고, 반 평지여서 대부분이 구릉지인 죽전보다는 훨씬 더 좋아 보인다. 이번에는 동백에서 제일 좋은 아파트를 공략해볼 생각이다. H는 시간차 전략을 쓸 계획이다. 일단 동백에 물량이 터질 때 동백아파트를 잡고, 3개월쯤 매입 기간을 길게 잡아 놓은 후, 죽전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자한 돈으로 중도금과 잔금을 내고, 적정 시점에 죽전 아파트를 팔려고 한다. 판교 중대형 평형 분양이 계획된 8월까지 죽전 아파트는 조금 더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12월까지 갈 수도 있다.

“동백에 전세 파동이 오고, 정상 물량이 나오는 6,7월쯤 동백의 아파트를 사야지. 재작년 죽전의 경우에도 입주 시작 3개월 정도가 되니 저점이 형성되었었거든…”

H는 구정 이후부터는 매주 동백을 가서 물량 체크를 해 볼 예정이다. 동백 물건들의 대부분이 중도금 이자 후불제 아파트들이어서, 입주 시작 후 3개월쯤이 지나면 잔금 납부가 버거운 물건들이 쏟아질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후…’ 시린 손을 비비면서 Emart로 들어오는 죽전 사람들을 바라본다.


C

점심 시간인 12:30… C가 커피숍에 들어왔다. 구석자리에 빈 의자가 한 곳 보인다. 동쪽에서 비추던 태양이 머리 위로 와 있다. 점심 시간이 시작되고 넓은 푸드코트에는 손님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커피숍의 썰렁하던 찬기운도 가시고, 빈 자리가 거의 없어 보인다. C는 서울 신내동에서 왔다. C는 어떻게, 어떻게 직장을 잡다 보니 신내동에 살게 됐다. 차곡차곡 돈을 모아 직장 근처 33평 아파트를 샀지만, 도무지 오를 기미가 안 보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난 주에 부동산 사무실에 알아보니 2년 전 매입 가격보다 아파트 가격이 1천만원 정도 하락한 것이다.

“나원. 이런 경우가… 여긴 서울 아닌가?”

C는 직장 동료로부터 죽전이 유망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죽전은 대개가 새 아파트인데다가 지하철도 있고, 내년이 되면 매머드급 신세계가 들어온다고… 분당권에 제대로 된 백화점이 없어서 사람들은 죽전으로 몰려들게 되어 있어. 판교 영향으로 분당, 용인이 유망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겠지? 자네도 늦기 전에 옮겨보게. 아직 시작에 불과 하다구…”

아침 일찍부터 죽전역 네거리와 풍덕천 일대를 둘러보고 이곳 저곳 시세를 물어봤다.
푸우 …’ 길게 한숨을 쉬면서 반쯤 담긴 담뱃갑을 만지작거려본다. 신내동 집을 팔고, 죽전에 싼 집을 산다 해도 융자를 최소한 1억5천만원을 얻어야 할 것 같았다. 부동산 중개사무소 아주머니는 죽전에 매물이 별로 없고, 다시 오르는 추세이니 빨리 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 출퇴근 시간도 부담스럽다.

“아무리 멀어도 오른다는 곳에 집을 사는 것이 낫겠다.”

C는 금방 차갑게 식은 커피를 들이키며 냉기서린 겨울 창 밖을 내다보았다.


O

오후 1시 50분. O가 가족들과 커피숍에 들어왔다. Wife와 아들, 딸… 사랑스러운 4가족이다. O는 분당에 들어와 산 지 10년이 넘은 분당 사람이다. 막 결혼하고 이매동 소형 아파트에 살면서 분당에서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회사에서 승진도 2번했고, 가족도 2명이나 얻었다. 1년 전쯤부터는 아파트 가격도 꽤 올랐다. 26평 아파트는 이제 우리 가족들이 살기에는 너무 좁다. 이번 기회에 죽전에 좀 더 넓은 집을 사야겠다.

동백이 입주가 시작되면, 동백 물량이 넘쳐나 죽전 집값이 떨어질 것 같다. 지난 번 죽전이 입주할 때도 분당 집값과 전세값이 떨어진 기억이 있다. 그 여파가 세면 분당까지 가격 하락이 이어질 지도 모른다. O는 오늘 죽전과 죽전 주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체크해 보고 천천히 이사 계획을 짤 예정이다. 그 동안 아내가 직장 생활로 모은 돈 3천만원과 내가 모은 돈 4,700만원을 합치면, 10평쯤은 쉽게 늘려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전철역도 가깝고, 버스 정류장도 가까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니면 조금 더 무리를 하더라도 수지나 구성권의 40평형대 아파트를 잡아볼까?

O 는 금새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빚을 얻어서 집을 사는 것은 금리 상승기에는 무리다. 그리고, 나는 빚내서 물건을 사고 싶지 않다.

“당신 무슨 생각해. 빨리 커피 마시고 집 보러 가야지.”

핑크색 코트를 꼼꼼하게 추스려 입고 보라색 머플러를 어울리게 맨 아내가 아이들을 안고 웃고 있었다.


B

오후 3시… 해가 산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다. B가 커피숍에 들어왔다. B는 오전10시에 성남시 다세대주택을 출발해서 판교를 둘러보고 오리역에 내려서 죽전까지 왔다. 뜨거운 녹차라떼를 한 잔 받아 들었다. 몇 달 전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3년 넘게 앓아 누워계시던 아버지 병환과 갑작스런 어머니 병치레로 B는 만신창이가 됐다. 결국 작년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도 어디에 계신지 이쪽 저쪽을 다 수소문해봐도 찾을 수가 없다. 집에는 아직 미혼이거나 학생인 동생들이 셋이나 있다.

B는 나이 40이 다 됐지만 제대로 된 결혼 상대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B는 감색 파카 호주머니에서 청약 통장을 꺼내보았다. 1997년 8월… 주택은행… 벌써 10년이 다 된 통장이었다. 인생이 제대로 풀렸으면, 결혼도 하고, 좋은 가정도 꾸리고, 집도 한 채 장만했을 텐데… 세상은 무던히도 B 에게 등을 돌렸다.

B는 올해 판교에서 분양하는 중대형 임대 아파트를 신청해볼 생각이다. 37평형에서 55평까지 중대형 임대 아파트가 나온다고 하니 상당히 기대가된다. 이곳 저곳 남의 집 전세를 사는 것도 지쳐가는데다가, 2년마다 보증금을 올려주고 옮겨야 하는 일도 성가시고,이사 부대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성남시내에 30평짜리 다세대 주택을 한채 샀지만 사는것이 아파트만큼 편리하지 않다. 식구도 많은 편이고..중,대형 공공임대아파트에 당첨되서 지금부터 10년쯤 열심히 살면, 그 아파트를 살만한 돈을 모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본다.

판교광풍이 부는걸 보곤... 이럴줄 알았으면 부모님이나 동생명의로 국민주택규모 소형평수 분양아파트를 청약할 수 있는 통장이나 들어놨을걸... 하는 생각도 해보긴 했다.… 아니, 중대형 임대아파트가 이번에 나와주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성남 우선 순위혜택과 나같은 1주택자도 청약기회가 있다는 것 같은데…

내일은 아침 일찍 은행에 들러서 청약자격과 아파트 임대료등을 자세히 물어봐야겠다. 여하튼 어머니부터 찾고, 내 집 같은 안정된 집을 구하고, 결혼도 하고,동생들도 돌봐주고… 차곡차곡 닥친 문제들을 풀어가야 할 것 같다.

죽전 네거리 삥 둘러싼 아파트에 ,오밀조밀한 단층 상가들이 몰려있다. 종전에 이곳이 야산이었고, 논밭이었음을 보여주는...다정하고 정감어린 시골풍경이 다사롭게 펼쳐지고 있는 한 겨울오후이다.

(건축사, 프리미엄 부동산 컨설턴트, 생활칼럼니스트),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