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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추수 앞둔 ‘서울의 곡창’ 마곡벌 [중앙일보]
서울 전체 논의 절반 … 내년 ‘R&D시티’ 착공

농가 30여 가구 “20년 전부터 예상은 했지만 … ”

서울 내발산동 마곡지구에 벼가 익고 있다. 농민 류광환씨(50)가 추석을 앞둔 12일 논에서 피사리를 하고 있다. 마곡지구의 논은 약 230만㎡로 서울시 논 전체 면적의 절반에 해당하는 크기다. 이곳에서 매년 서울 시민이 하루 먹을 분량의 쌀이 생산돼 왔다. 내년에 도시개발사업이 시작되면 사라진다. [최승식 기자]

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마곡지구에 펼쳐진 벼논. 봄에 심어 놓은 벼들이 아직 푸른빛을 띤 채 사람 허리까지 자라 있다. 서울이라지만 전형적인 시골 풍경과 다름없다.

벼 이삭의 껍질을 까 보니 하얗고 끈적거리는 액체가 나온다. 앞으로 한 달 정도 지나면 하얀 액체는 딱딱해져 쌀알이 된다. 일찌감치 머리가 무거워진 몇몇 벼들은 곧 이 자리가 황금빛 들판으로 변하리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곳에 뿌리를 내린 마지막 벼들이다. 내년이면 마곡 도시개발구역사업 대상 지역에 지정돼 공사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풀 냄새와 벌레 소리가 나는 서울 같지 않은 서울인 이곳은 내년 하반기부터 굴착기와 바위 깨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된다.

류광환(50)씨는 이곳 12만㎡ 논에서 30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언젠간 농사를 더 이상 못 짓겠거니 생각했는데 올해가 마지막이 됐다”고 말했다. 마곡지구가 개발된다는 얘기는 20년 전부터 나왔다. 논을 갈아 엎고 아파트나 상가를 세운다는 계획이 이곳 농민들에겐 갑작스러운 이야기도 아니다.

“그래도 아쉽네요. 보상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앞으로도 농사 짓고 살 수 있으면 좋겠네요. 30년이나 해 왔는데 이제 와서 하는 일을 바꾸기도 막막하고….” 류씨는 남의 땅에서 농사를 지어 주고 있어 보상금도 거의 없다. 트랙터가 몇 대 있어 농기구 보상금만 조금 챙길 수 있다. 농사를 잘 짓는다며 땅 주인들이 하나 둘씩 찾아와 농사를 맡겨 지금처럼 넓은 논을 가꾸게 됐다.

그는 “올해 추수를 끝낸 뒤 내년 계획을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강서구 가양동·공항동 부근 농지는 아직 개발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지만 땅 주인에게서 농사 지을 땅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 논 40% 사라져=마곡지구 342만㎡ 가운데 논이 차지하는 면적은 약 230만㎡. 현재 30가구 정도가 농사를 짓고 있다. 서울 시내 전체 논 면적(511만㎡)의 45%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 농지는 강서구 가양동·공항동·방화동·개화동 일대에 걸쳐 있다. 지난해 서울의 쌀 생산량은 총 2114t. 2006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78.6㎏)을 기준으로 서울 시민이 하루 정도 먹을 분량이다.

면적당 쌀 생산량이 동일하다고 보면 내년부터 서울의 쌀 생산량은 서울 시민이 두 끼 정도 먹을 분량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그만큼 희귀한 땅인 서울 논에서 일한다는 생각에 류씨는 그동안 자부심도 느껴 왔다. “나고 자란 곳에서 줄곧 농사 지을 수 있어 만족했지요. 물 고여 있는 땅이 서울에 있으면 환경도 좋아지니 보람도 있었죠.”

몇 해 전부터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류씨가 지금까지 수확한 올해 벼는 13가마(약 1040㎏). 이 쌀을 추석에 가족·친지·이웃들과 함께 나눠 먹을 계획이다.

최선욱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마곡지구=서울시는 2005년 마곡지구를 정보통신(IT)·바이오(BT)·나노(NT) 등 첨단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마곡R&D시티’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국토해양부의 마곡 도시개발사업구역 지정 승인을 받았다. 시는 올 10월 마곡지구 개발사업 실시 계획을 세우고 내년 하반기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5조1620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가는 마곡지구 개발사업은 2031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성된다. 총면적의 약 20%(66만3000㎡)에 해당하는 지역은 주거용지로 지정돼 있다. 뉴스와 매거진을 한번에! 중앙일보 모바일 Highⓙ <90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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