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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연사 길은 나의 산책코스가 아니다. 
거기 입구 조금 못미치는 두갈래길에서 항상 용진사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용진사로 난 산림욕장길은 그 길이가 약 5킬로정도 이어진 긴 소방도로인데 길이 거의 평지수준에 가까울만큼 경사가 아주 완만하고 주변 자연환경이 빼어나 조깅코스로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그뿐아니라 산악자전거를 즐기기에도 당사자들의 입을 빌어 전국 최고수준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상연사로 가는길은 산책길이라기보다 경사가 심한 그야말로 등산코스이다. 

상연사엔 작년 겨울 처음갔었다. 뜻하지 않게... 일요일 오후였다.
늘 하는 일과였지만 그날 역시 산책을 위해 신발바닦창이 반쯤 닳아 없어진 가볍고 편안한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산길로 막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왠일... 
얼었던 눈이 한낮의 태양열기로 군데군데 녹아있는게 아닌가? 
길이 몹시 질었다.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만큼 
계획에도 없던 수리산정상 태을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닳고 닳은 신발을 신고서...
몇발자국 올라가자 눈이 녹지않고 그대로 쌓여있었다.
질지 않아 좋았지만 조금 미끄러운 듯 했다. 
그러나 오르막은 그럭저럭 괜찮아 등산엔 큰 무리가 없을 듯 보였다.

어느 정도 올랐을까 곧 내리막이 이어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산은 내리막으로 접어들자 낮동안에 살짝 녹았던 눈이 그늘이 지기 시작하며 다시 조금씩 얼어붙고 있는 상태였었다. 더군다나 내리막이었으니 몹시 미끄러웠다. 한발자국 내딛기가 조심스러울 만큼... 
자칫하다가는 뒤로 자빠져 눈썰매를 타듯 까마득히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십여분을 앞으로 더 전진했다. 미련스럽게도 조금 더 가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며...
그러나 왠걸 가면 갈수록 더욱 미끄러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단 한걸음도 내딛을 수 없는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급기야 오도가도 못하는 입장이 되고만 것이다.
태을봉까지는 아직 두 봉우리나 더 가야하는데... 

그제서야 하산하고자 지름길을 찾아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길은 그야말로 고행길이었다. 급경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날도 저물어 가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심스레 한발한발 아래로 내딛였다. 허나 아무리 조심한다해도 한걸음 내딛은 발은 이내 미끄러져 즉시 구르거나 옷가지가 나무에 걸려 찟기기 일수였다. 
차라리 낮은포복으로 바짝 엎드려 내려가는 편이 나을듯 싶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포감이 밀려왔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자칫하면 수십미터 벼랑으로 추락해 그즉시 황천길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공포감이..

미끄럼을 타며 혹 가속이라도 붙을까봐 애꿎은 나뭇가지를 죽자 사자 휘어잡았다. 
기껏 오백미터 높이도 안되는 산이 히말라야 K2 봉우리쯤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고난도 기술을 발휘해 그곳을 내려가는 전문산악인 같았고. 
그때였다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 려왔다.  

얼른 일어나 나무 뒤에 기대어 웅크리고 앉았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들킬까봐서... 
잠시후 젊은부부 한쌍이 다정하게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아주 유유히... 
그들이 저~쯤 멀어져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이 프로산악인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고도의 기술을 발휘하며 또다시 힘겨운 눈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한 10여분 쯤 내려가자 반갑게도 작은 사찰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스님이 마당비로 정성껏 쓸어놓은 길위에서 드디어 나는 일어설 수 있었다.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이다.  

기쁨도 잠시 온몸이 와들와들 떨려왔다. 어찌나 미끄럼을 탔던지 옷이 흠뻑 젖어있었다. 
특히 바지 엉덩이부분은 완전 진흙범벅이 되어 있었고 발은 이미 수차례 눈구덩이에 빠져 시리다 못해 아파오고 있었다. 등산화만 제대로 갖춰 신었어도 그냥 평범한 산행이 되었을것을... 
아무튼 지독히 운수없던 지난 겨울이야기였다.

그 때 그 절이 바로 상연사였다. 아마 처음이었던걸로 기억된다. 지척에 살면서도..
그리고 그 앞으로 펼쳐진 8단지와 주변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덧 날은 시나브로 저물고 별빛 맑은 겨울밤 하늘 아래 보석처럼 빛나는 산본 신도시 야경이...

그 와중에서도 셔터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