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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매도폭탄 본격화

국채마저 내다팔아…“설마 설마했는데”충격

13兆몰린 하반기 만기연장 안될땐 사태심각

설마설마했는데 드디어 외국인들이 채권시장에서 매도폭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저 채권을 파는 게 아니다. 지난해 재정거래(국제 간에 금리 차가 있을 때 금리가 낮은 나라로부터 높은 나라로 단기 자금을 돌려 금리 차익을 얻으려는 거래)를 위해 매입했던 채권을 내다팔고 있다.


이제 하반기 13조원이나 몰려 있는 외국인 보유채권의 만기연장(roll over)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연장이 안 되면 채권투매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폭증하면서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 환율이 급등하면 물가가 오르고, 제2의 외환위기가 코앞까지 다가온다.


그럼 도대체 채권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부터 외국인들은 해외에서 저금리로 빌려온 달러로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한국 채권에 집중적 투자, 무위험 차익을 거두는 금리재정거래를 대규모로 해왔다.


글로벌 경제상황이 어렵지만 그래도 한국 경제의 기초(fundamental)가 탄탄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지난 3주간에 이어 이번주 들어서도 국채를 계속 내다팔고 있다. 특히 지난주 스탠다드차터드와 깔리욘뱅크로 추정되는 곳에서 통안채 매도물량이 쏟아져 나왔다. 외국인들의 통안채 순매도는 최근 1년래 처음이다.


특히 이들 두 은행은 재정거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태국계 자금을 운용하던 곳이다. 외국인들의 재정거래 포지션 반대 전환, 즉 국내 채권을 내다팔고 달러를 바꿔 한국을 떠나는 언와인딩(unwinding)이 처음 확인된 셈이다. 일반인들은 이게 무슨 큰일인가 싶겠지만 외국계 스와프하우스의 A브로커는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언와인딩이) 나올 줄 몰랐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놀랄 만도 한 게 이 언와인딩은 방아쇠 효과(trigger effect)를 가진다. 한 곳에서 통안채를 팔게 되면 통안채 전체 시장가격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통안채를 갖고 있는 다른 곳에서도 빨리 팔아 손실을 줄이려 나설 수밖에 없다. 시장 붕괴를 뜻하는 일종의 투매다.


하지만 한쪽에서의 매각만으로 투매현상이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주변 환경도 ‘투매’를 유발하기 꼭 알맞다.


먼저 대외적으로 글로벌 신용경색이 계속되고 있면서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돈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 채권 투자를 위한 달러 조달금리도 지난해보다 많이 올랐다.


대내적으로도 ‘팔자(Sell)’ 상황은 무르익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CDS(신용부채스와프)지수가 8일 다시 급등했다.


기업들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얘기다. 기업이 위험하니 국가라고 안전할 리 없다. 국가가 위험하면 통안채 등 국채 매력은 떨어진다.


환율 상황도 때마침 좋다. 원화 환율이 계속 올라가면 채권을 판 돈으로 달러를 바꿀 때 손해를 볼 수 있는데, 고맙게도 정부가 곳간인 외환보유액까지 털어 원화약세를 눌러주고 있다.


하반기 달러 수급 상황도 채권시장발 외화유동성 위기를 고조시키기 충분하다. 하반기 원유도입 평균단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달러 결제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인데, 달러를 공급해줄 수출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크게 나아질 상황은 아니다.


또 은행들의 해외 채권 만기도 하반기에 집중돼 있다. 은행들은 조선업체들의 달러 선물 환매도를 받아주면서 위험회피를 위해 달러 현물을 단기 차입해 시장에 내다팔아왔는데, 그 만기가 목전에 다가왔다. 달러로 빌렸으니 달러로 갚는 게 당연하다.


신동준 현대증권 채권분석팀장은 “외국인 채권투자의 대부분이 재정거래인데, 이를 청산한다는 것은 하반기, 특히 9월에 몰린 외국인 보유채권의 만기가 연장되기 어렵다는 것을 암시한다”며 “만기 연장이 안 되면 달러 유동성 위기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유지영 PCA투신 채권매니저는 “현재 외환보유액 2400억달러 가운데 단기 외채(1700억달러), 경상수지 적자(100억달러), 외환시장 개입지출(50억~60억달러) 정도를 제외한 실제 가용 외환보유액은 500억~600억달러에 불과하다”면서 “하반기 외환위기 발생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고, 설령 하반기에 터지지 않는다 해도 당분간 달러 수요 우위 상황이 계속될 것인 만큼 외환보유액을 아끼는 게 옳아 보인다”고 말했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