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보포털에서 거래포털로!

우리아파트 게시판에서 교육(yhrohtg) 회원님께서 등록해 주신 독립된글을 답변글로 옮긴 글입니다.
------------------------------------------------------------------------------------------------
(1)번을 먼저 읽어 주세요. 후반부 내용이라...

================================================================

자율적 규제가 사라진 학교

평준화로 바뀌면서 생활지도 면에서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 본교에서도 일어났다. 교복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머리를 요란하게 파머하고 당당히 등교하는 여학생도 있고, 남녀 학생이 교내에서 공공연하게 애정표시를 하는 광경도 자주 목격됐다. 잘못이 있어 훈계받으러 온 여학생이 교사 앞에서 양치질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들은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학교교육을 비하하는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평준화로 학습 의욕과 목표 의식이 약해진 학생들의 분별 없는 행동으로 보인다.

사교육 잡으려다 사교육 늘린 평준화

비평준화 때는 매우 활성화된 동아리 선후배 간의 ‘직속’ 관계로 연결됐던 끈끈한 연결선이 평준화 후 상당부분 퇴색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으며, 학교 생활 규범을 고의로 지키지 않으려는 학생들도 생겼다.

교실 벽이나 책상에 성에 관한 황당한 낙서가 등장한다든지, 학급 내에서 공공연하게 폭력을 행사한다든지, 유리나 게시물 등 학교 시설물을 파괴한다든지, 급우들을 의식하지 않고 수업을 방해한다든지 하는 일들은 예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평준화 이전에는 행동과 생각을 공유했던만큼 약간의 불편함이 있어도 선후배 간에 서로 참고 감싸 주는 따뜻한 광경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었다.

활성화된 동아리 활동은 상·하급 학년을 묶는 매우 강한 연결고리가 되어 정기 발표회 때는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가 혼연일체되는 감격스러운 축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 배정받아 입학한 학생들은 학교를 아끼는 마음이 선배들에 비해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신세대 학생들이 나타내는 행동특성, 즉 ‘나만’ ‘여기’ ‘지금’ ‘바로’의 단순명료한 생각의 변화일 수도 있지만 평준화도 상당부분 영향을 준 듯싶다.

이처럼 평준화의 또 다른 문제점은 대부분 본인이 원해서 입학한 학교가 아닌 만큼 애교심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물론 본교에 배정받아 재학하는 학생들은 나름대로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만족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피나는 노력으로 꿈에라도 진학하고 싶던 학교에 실력으로 입학했다면 스스로 선택한 그 학교에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될 것이다. 애교심은 그 학교가 지닌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중하게 한다. 그러나 타율적으로 배정받은 학생들은 학교에 대해 특별한 애정과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또 다른 불만과 갈등을 잉태한다.

비평준화 방식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학교들은 나름의 특색과 차별화가 나타난다. 본교의 예를 들어 보자. 개교 당시에는 본교에도 흡연 학생이 많아 화장실이 거의 흡연실이 된 적도 있었다. 학생과를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의 고민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학생회 임원들과 협의해 자치적인 금연 활동을 펴기로 결정하고 통제와 감독까지 학생들 스스로 하게 했다. 이후 본교에서는 교내 흡연 학생은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교의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평준화 3년차인 올해 들어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직도 타교에 비해 상당한 학력의 우위에 있는 학생들은 나름대로 전통을 준수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만 학교 주변의 시각은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고교 평준화 시행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사교육비 절감이다. 그렇지만 나는 평준화 시행으로 오히려 사교육비가 늘었다고 생각한다. 본교의 경우 비평준화 시절에는 고학년으로 갈수록 학원이나 과외 수강이 줄어들어 고3 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학교수업에만 열중했다. 일부 학생들이 학원에 나가는 것도 내신 관리 차원에 지나지 않았다.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에 대해 기본적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평준화 이후에는 더 많은 학생이 학원 수강을 하고 있다. 그 숫자는 고학년으로 갈수록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평범한 학생이라면 비평준화 집단 속에서 받는 수업의 양이나 질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에 비해 적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대학 입시를 염두에 둔 학생은 학교 수업에 불안을 느끼고, 학원 수업이나 과외 교습을 하게 마련이다.

이는 또 학원이나 과외가 필요 없는 학생들까지 학원과 과외로 발길을 돌리게 한다. 그 결과 지금 일산 지역에서는 학원이 그야말로 부지기수로 늘어나 고 있다. 거리마다 수십 개의 학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됐다. 남들이 부정하든 말든 평준화 이후 고양 시내에는 다양한 종류의 200개 이상의 입시학원이 성업중이다.

학생들이 주머니를 털고 사채를 빌려서라도 학원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학원에서는 자신에게 맞는 수준을 골라 수업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교과를 각자의 수준에 맞게 예습 지도를 받은 학생이 수준별 수업이 불가능한 학교 수업 시간에 무슨 흥미를 느낄 수 있겠는가. 때문에 평준화 지역에서 비평준화 지역에 비해 학력이 상승했다는 말은 공교육에 의한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주머니돈을 투자한 사교육의 결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평준화 시절 고학력 중학생들이 선호하던 본교는 재학생 중 과외나 학원 수강생이 40%였어도 세칭 5대 일류대학 진학생이 졸업생의 80%를 넘었다. 당시에는 자율학습이나 특기 적성수업을 그만두고 학원에 가겠다고 담임에게 떼를 쓰는 학생을 보기 어려웠다. 수준에 맞는 수업을 학교에서도 받을 수 있었고, 따라서 모두가 만족하는 학습 목표를 쉽게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력이 부진한 학생들이 입학한 학교에서는 저학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큰 고통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수업 목표는 쉽게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학교에서는 고입 평준화 덕분에 조금 수준이 있는 학생들을 받아 수준 있는 수업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본교는 비평준화 때는 외국유학을 위한 자퇴생이 연간 5∼10명 있을 정도로 학적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평준화 실시 이후인 2002학년도에는 1학년에서만 21명이 떠나 평년의 2배를 기록했고, 2002학년도에는 31명이 전학 혹은 유학을 떠났다. 이 학생들 중 90%가 강남의 고교를 선택한 것이 평준화의 악영향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남들과 차별화된 아이를 요구한다. 자기 자녀의 능력이나 특기를 고려하지 않고 동원할 수 있는 경제력과 재력을 모두 자식에게 투자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는 차후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 같다.

수십 년 동안의 진로 지도 경험을 통해 학생에게 맞는 특기교육을 강조하고 설득해 보았지만 대책 없이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평준화된 이후에는 비평준화 때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을 교사에게 서슴없이 말하는 학부모가 늘어나고 있다.

사교육의 핵심은 고교입시 아니라 대학입시

이런 현상은 비단 평준화가 원인이 아니라 사회 저변에 흐르는 학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교사가 바뀐 것도 아니고 학교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아닌데 학생들이 목표하는 만큼의 실력을 높이지 못하는 이유가 온전히 선생님의 지도력 부족에서 오는 것인가.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불투명한 장래와 직업, 생활에 대한 보장을 위해 일류 대학에 진학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어려운 가정경제를 무시하면서까지 자식의 교육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평준화냐 비평준화냐 그 자체가 사교육비 절감에 기여한다는 생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그런만큼 사교육비 절감을 고교 평준화의 당위성에 걸면 안 된다. 근본적으로 중학생들의 과외나 학원 수강은 비평준화 지역 고교에 입학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목표인 특정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욕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면 엄청난 교육비를 들여 타지의 특수학교나 특목고로 입학시키려고 한다. 중3부터 아예 강남이나 서울의 외국어고에 입학시키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간다. 부산의 특목고나 강원도의 모 고등학교로, 아니면 아예 미국·캐나다·중국·호주 등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도 있다. 이러한 학생들이 앞에 기술한 바와 같이 재학생 1학년 기준으로 평준화 전보다 거의 2∼3배에 이르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평준화 실시 30년인 서울 지역의 사교육비가 지방 비평준화 지역의 수십 배 심하게는 수백 배에 이르며, 그러한 투자로 서울의 일류 대학을 강남의 일부 부유층 자녀들이 휩쓸고 있다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본교의 비평준화 마지막 졸업생들인 2004년도 졸업생들의 세칭 5대 일류대 진학률(203/361)을 서울의 고교들이 성취하려면 얼마나 많은 사교육비를 지불해야 할까. 상상도 되지 않는다.

철저한 관리 속에 운영되는 평준화도 절대로 경쟁 체제를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각 학교의 서열도 인위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 제도에 의한 강제적 평준화는 또 다른 경쟁을 부른다. 엄연히 대학 서열이 정해져 있고, 선호하는 일류대학이 존재하는 한 학생들의 자율적인 경쟁은 강제로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몇몇 언론이나 몇 개의 단체, 학자들의 활동으로 정리되고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학교가 같은 환경과 같은 시설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서울 지역에서 해마다 2월 말부터 3월 초에 특정한 희망 학교로 전학하기 위해 영하 수십 도의 혹한에도 마다하지 않고 교육청 앞 노상에서 3~4일씩 노숙해 가면서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모두 평준화된 학교라면 왜 밤을 지새우면서 줄을 서야 하는가.

그들이 전학하고자 하는 학교들 사이에 묵시적인 서열이 형성되어 있거나 아니면 특별히 좋아하는 학교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훌륭하게 적용되는 평준화 제도에서 서울 강남 학군은 열외여서 수억 원의 부채를 짊어지고도 강남으로 학생을 전학시키려고 하는가.

평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평준화가 학생들이 공평하게 교육받을 권리와 학교 선택권을 박탈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평준화야말로 교육적 선택권을 제약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비평준화 시절에는 학교 간의 학력 차이로 학생들이 갈등했지만 이제는 그 갈등이 교실로 옮겨와 학교 내에서 온 종일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들이 단지 평준화로 인해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평준화 제도가 이러한 현상을 부추긴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가 원하는 학교에 내 실력으로 입학해 내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는다면 이런 사건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 선택의 권리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모든 학교가 평준화됐다면 왜 강남으로 몰리나

지금 경기도에 위치한 평준화 지역에는 최고의 실력을 소유한 중3 학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학생만 있을 뿐이다. 2003학년도 고입 배정자 중 상위에서 100명 중 3명만이 이 지역 고등학교에 배정을 신청했을 정도다. 그러니 평준화라는 이름으로 실시되는 고입 전형이 이 지역에 무슨 결과를 초래했는지 암시한다. 이는 또한 우리가 학생들을 위해 진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반성하게 한다.

대중의 의견을 존중하기에 앞서 소수의 의견도 큰 결정의 단초가 될 수 있기에 평준화 후 수시로 마음에 와 닿던 생각을 두서 없이 적어 봤다. 부디 모든 학생들이 모든 부담을 떨쳐 버리고 편안한 가운데 공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부를 절단하듯 일률적인 평준화의 적용보다 지역과 환경에 맞는 좀 더 발전적인 제도의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국민이 평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더라도 학급내 학력 불균형에서 파급되는 우수 학생들의 학습 의욕 상실을 유발하는 비평준화 제도가 과연 국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육 제도로 적절한지, 그 속에서 혹시 획일화된 문화와 일차원적 가치 판단을 하게 하는 요소는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나아가 진정으로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살리는 교육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냉철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