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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남편과 가끔 하는 야간산행을 위해
마트에서 성능좋은 후레쉬를 하나 샀습니다
머리에 두르는 3만7천원짜리 독일제 후레쉬인데 참 밝더군요
작은게 어쩜 이렇게 밝을까... 신기하기도 해라
이젠 야간산행때 바닥이 훤히 보여 돌뿌리에 걸리거나
요즘같은 겨울철 눈에 미끄러질 염려 없어 걱정 한시름 덜었다 싶더군요

그주 주말쯤엔가 모처럼 가족 셋이서 후레쉬를 머리에 두르고 야간산행을 갔다왔습니다
야간산행은 물론 일부러 즐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우리가족처럼 주간에 시간이 여유치 않아 찾는 산행인데
막상 가보면 나름대로 장점이 있습니다
인적이 드물어 조용한데다 쌀쌀한 날씨의 공기는 한낮보다 신선한 느낌으로 우리몸 깊숙히 들어와 더욱 상쾌함을 줍니다
게다가 아래로 펼쳐지는 보석같이 찬란한 산본신도시 야경까지... 정말 죽이지요

그날 산행을 마치고 막~ 잠자리에 들 무렵 밤 12시쯤 이었습니다
이불속에 누워 칠흑같은 어둠속에 그 성능좋다는 후레쉬를 켜봤습니다
과연 실내에서의 독일제 후레쉬는 국산것에 비해 얼마나 밝을까
아니 밝기에 앞서 그 빛이 얼마나 부드러우며 비춰진 사물의 색체를 얼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기대속에 "딸깍" 버튼을 눌렀습니다
1초에 299천킬로를 간다는 빛 우주에서 가장 빠르다는 속도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E=mc2 라는 특수상대성 이론을 논할때도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빛

그렇게 다섯평남짖한 안방 천정위로 순식간에 퍼져나간 빛은
그순간 속도보다도 더욱 경이롭게 내 눈에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내눈에 보이는것 그것은 그대로 우주였습니다
세상에...
천억개 별이 모인것이 은하고 그 은하가 다시 천억개가 모인것이 바로 우주라던데
그 우주가 바로 우리집 안방에도 있었구나

그동안 몰랐던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던 미세먼지들이
그 성능좋은 후레쉬로 인해 아주 적나라하게 내 눈에 보여졌던 것입니다
옆에 누워 그걸 바라보던 권영감의 눈도 휘둥그레졌습니다
"아니... 우리집에 먼지가 이렇게 많았단 말이야~"
그걸 본 이상 께름직한 생각에 도처히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굳이 마스크를 쓰고 잔다면 모를까 말입니다

그동안 미세먼지가 인체에 주는 심각성을 보도를 통해 익히 잘 알고있던 터라
며칠후 부랴부랴 우린 렌탈공기청정기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곤 그 성능좋은 독일제 후레쉬를 보며 감사했었지요
고맙다 네가 아니었음 더 많은 시간들을 그 먼지속에 살았었겠구나

그 후로 그 사건은 잊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2달인가요 렌탈업체에서 코디가 방문했습니다
필터를 갈려고 공기청정기를 열어본 그녀가 깜짝놀라 하는말이
"아니 필터가 왜이리 깨끗해요~ 이거 많이 사용안하셨어요 ?" 한다
왜요? 하고 물으니...
다른집은 교환할때쯤 되면 필터가 시커먼데 이집은 아직 새것처럼 하얗다고 한다
그럴리가 이집에 먼지가 얼마나 많은데....
그녀는 너무 아깝다며 필터를 갈지 않고 그냥 뚜껑을 닫아버렸다
그러곤 새 필터를 내게 건네주며 보관했다가 다음에 쓰자고 했다

일을 마치고 급히 나가려는 코디에게 궁금증을 떨치지 못하고 내가 물었다
"혹시 공기청정기가 잘못된거 아니예요~
이집에 먼지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녀 "曰"
"사모님 이집은 괭장히 깨끗한거예요.. 얘들도 없잖아요..
이 정도면 관리를 엄청 잘하고 사시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여러곳을 정정기 관리하러 돌아다니지만
산본은 다른곳에 비해 먼지가 없어요~"

그녀를 보내고 청정기가 들여진 실내를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 그랬구나 그때 보았던 그 우주는 어쩔 수 없이 어디나 존재하는 거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까지 잡으려는 것은
결국 질수밖에 없는 게임을 벌이는 나의 어리석음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