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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이즈미 내각은 2002년 11월 공장-대학 입지 규제 등 수도권 규제를 해제했고 민간 자본에 의한 대대적인 도쿄 재개발 계획을 추진했다. 지방과 지방 출신 정치인들을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도쿄 규제를 철폐했던 것이다. 도교 규제를 위해 국민을 설득한 명분은 국가 경쟁력이었다. 도쿄를 뉴욕, 런던과 같은 선진국의 대도시보다 더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지 못한다면 일본의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명분으로 국민을 설득했다.

일본 정부가 도쿄 재개발에 힘을 모으고 있는 것도 뉴욕·런던이 도심재개발을 통해 금융·업무 중심도시의 기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의 리빙스턴 시장이 도심내 고층빌딩을 허용하자 시민단체가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런던시 정부는 “도심의 기능을 강화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기업을 뉴욕, 파리, 도쿄로 빼앗길 것”이라며 도심의 재개발에 적극적이다.

파리시도 업무 중심지역인 라데팡스를 대대적으로 재개발하고 있다! 일본의 지방이 도쿄권 규제 철폐로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오히려 외국으로 떠났던 일본 기업들이 다시 일본의 지방에 공장을 짓는 ‘유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민간의 디벨로퍼(개발사업자)들의 창의적 개발도 도쿄 도심 부활에 한 몫하고 있다. 일본 도심개발의 대표적 주자가 롯폰기힐스를 개발한 모리빌딩의 모리사장이다.

모리빌딩은 1970년대 아파트·업무·호텔·문화시설(산토리 컨서트홀)을 갖춘 아크힐스를 개발한데 이어 롯폰기힐스를 통해 복합개발의 개념을 완성했다. 모리사장은 직장과 주거 분리를 전제로 했던 산업사회와 달리, 직장과 주거의 일체화가 더 효율적인 지식사회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도시, 수직도시론을 주창한다. 수직도시란 고층개발을 통해 주거·직장·문화시설·교육·쇼핑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도시이다.

“시간은 대단히 귀중한 자원이다. 하루를 26시간으로 늘릴 수는 없지만 도시구조를 바꾸면 시간을 더욱 유의미하게 쓸 수 있다. 즉 ‘시간 창출형 도시’를 만들면 시민들의 시간을 훨씬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현재 도쿄의 도시구조는 그렇지 않다. 주택지가 교외에 펼쳐져서 주거와 직장이 떨어지고, 통근에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퇴근 후나 휴일에 콘서트나 쇼핑을 즐기거나, 교류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도 여러 제약이 많다. 그러나 도보권에 직장·주거·놀이·배움·음식·휴식·문화 등의 도시기능을 모은 컴팩트시티(compact! city)를 도심 곳곳에 만들어내면 교외에서 도심으로 회귀하고 생활도 크게 바뀔 것이다. 장거리통근의 시간을 가족 때문에나 자원봉사에게 사용해도 좋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공부를 해도 좋다. 소비나 오락에 돌려도 좋다.”

모리사장은 수직도시를 통해 지식산업의 발전도 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시간이 늘어나면 다양한 활동이 늘어난다. 그 파워와 수요가 다음 시대의 일본경제를 리드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나 교육 문화산업, 서비스산업, 정보산업과 같은 도시형 산업의 번성시킬 것이다. 동시에 개인에 있어서도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확산될 것이다.

새로운 도시구조는 여성도 육아를 하면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 일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도 늘릴 것이다.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새로운 인생이나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기회도 늘어날 것이다.”일본 등 선진국 부동산개발의 특징의 하나가 펀드중심의 개발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도심재개발은 대부분 분양을 통해 개발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롯폰기힐스, 미드타운 등 대부분 도심재개발은 부동산펀드와 기관 투자가로부터 자금을 조달, 건물을 지어 운영하면서 수익금을 배당하는 형태이다. 개발업체들은 당장의 이익보다는 상권을 활성화하고 높은 임대료를 책정할 수 있도록 랜드마크적으로 개발한다.

롯폰기힐스나 미드타운처럼 넓은 녹지배치와 다양한 문화공간을 설치하는 것도 랜드마크화해서 높은 임대료를 받기 위한 전략의 하나이다.일본 도심재개발이 활성화된 또 다른 배경이 교외 신도시의 몰락이다.

일본 도쿄의 부도심 신주쿠에서 쾌속 열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타마 뉴타운의 관문 ‘타마센터역’. 역사 입구에 늘어선 쇼핑센터는 비교적 북적거린다. 역사 앞 공원을 가로 질러 5분 정도 걷자, 3~5층의 나지막한 아파트들이 모습을 드러난다. 우거진 숲속에 아파트가 자리를 잡고 있어 마치 도시 전체가 공원 같은 분위기이다.

한국이 신도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환경 친화적 신도시’임을 실감케 한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는 적막하다. 대 부분 중장년층이나 노인만 오갈 뿐 젊은 주부나 어린이를 만나기는 어려웠다. 아이들이 뛰어 놀아야 할 초등학교 건물에는 ‘종합복지시설’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폐교를 한 듯 교실의 책걸상은 창고에 쌓여 있었다. 단지 상가도 폐점 안내문을 내건 상점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이 곳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꿈 도시! ’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청년층 인구 유입이 줄면서 노인 인구의 거주비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특히 어린이가 줄면서 이 일대 초·중학교 6개가 폐교했다. 집값도 10년전 가격의 3분의 1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도쿄권 신도시들도 대부분 사정이 마찬가지이다.

이때문에 일본에서는 신도시가 ‘세대 불일치 도시’, ‘올드타운’으로 불리기도 한다. 젊은층이 신도시를 외면하는 것은 주거 위주의 베드타운으로 개발돼 문화시설과 직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요시이케 하야시(40)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해 쾌적한 환경보다는 출퇴근이 편리하고 문화시설과 쇼핑시설을 잘 갖춘 도심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 일본 정부의 수도권백서는 “도심은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신도시가 있는 교외지역에서는 35%의 행정단위에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오오사카 인근의 센리뉴타운은 1975년 12만9000명을 피크로 최근 9만명대로 급감했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지방은 물론 수도권 신도시조차 인구감소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신도시 개발을 사실상 포기, 도심 재개발로 전략을 전환했다.

일본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지방 중소도시 도심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외곽 쇼핑센터를 규제하는 법률까지 만들었다.

시외곽에 대형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도심상권이 큰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도심개발보다는여전히 신도시개발에 목을 매고 있다.

주택이 부족한 수도권뿐만 아니라 고령화현상이 이미 본격화된 지방에까지 신도시를 만들고있다. 자칫10년,20년 후에는 우리의 신도시들도 일본의 신도시와 같은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

정부는 재개발사업을 단순히 주택공급이 아니라 국가경쟁력 강화와 고령화에 대비한 전략차원으로 방향을 전면 수정해야한다.



[차학봉 '일본에서 배우는 고령화 시대의 국토-주택정책'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