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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야당, 반값 청와대

서울 근교 어느 신도시에 ‘반값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집 갖는 게 평생 소원이었던 사람들이 “내게도 집이 생겼다”며 들뜬 마음으로 모여들었다. 아파트 부지는 비록 정부 땅을 임차한 것이지만, 벽이며 천장이며 바닥이며 건물이 내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 뿌듯했다. 이젠 전세금을 올려 달라는 소릴 듣지 않아도 되고, 어느 날 대책 없이 이삿짐을 싸야 할 불안도 없어졌다. 세상 모든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지는 듯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 갔던 자식이 징징 울면서 집에 들어온다. “아빠 엄마, 내가 반값 아파트에 산다고 애들이 반값 아이라고 놀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미 옆집 아이들도 ‘반값 아이’ 소릴 듣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을에 사는 일반 아파트 사람들이 반값 아파트 주민들을 보는 눈빛이 달라 보였다.

‘반값 주민’ 취급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반값 아파트도 하나 둘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자 건물이 낡고 수도에서 녹물이 나왔다. 외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수도관을 갈려고 해도 돈이 없어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래도 집이 없을 때보다는 낫지” 하고 생각하며 견뎠다. 하지만 다음에 찾아온 것은 공포였다. 인근 일반 아파트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반값 아파트는 시간이 갈수록 낡아져 가격이 떨어졌다.

20년, 30년 지나자 건물 값이 반토막 났다. 재건축을 하려 해도 엄두가 안나고, 재산 1호(건물)를 송두리째 날려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서둘러 집을 팔려고 해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 급기야 성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다. 전국의 반값 아파트 모임이 결성돼 “정부에 속았다”며 잃은 재산을 보상해 달라고 시위를 벌인다. 이건 소설이 아니다. 반값 아파트가 생긴다면 실제로 맞을 수 있는 상황이다. 싱가포르처럼 국민 80% 이상이 반값 아파트에 살고 부동산 가격이 안정된 곳에선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개인 재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투자돼 있고, 주택 가격이 대개는 땅값이기 때문에 반값 아파트처럼 건물만 갖고 있다가는 자산가치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민들에게 집을 싸게 주기는커녕, 오히려 내 집 마련의 꿈을 좌절시키고 그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게다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 ‘반값 아파트족(族)’이라는 새로운 빈곤계층을 형성시켜 사회 분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반값 아파트는 이런 부작용들이 뻔히 보이는 정책인데도 여야는 단 한 번도 수요자인 국민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서민층 주택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발표했고, 한나라당은 여과 없이 당론으로 채택했다. 야당의 ‘반값 아파트’ 정책에 서민들이 술렁거리자, 청와대 변양균 정책실장은 “우리도 면밀히 검토해왔다. 부작용이 많더라도 대책을 내놓겠다”며 반값 아파트 정책의 원조인 것처럼 나섰고 열린우리당도 가세했다. 그러다 정부 실무진이 반값 아파트의 위험성을 보고하며 반대하자, 그제서야 여권은 “반값 아파트는 한나라당 작품”이라며 발을 빼고 있다. 만일 과거 대선 때처럼 정부 관료들이 선심 정책에 슬쩍 눈감아 줬더라면 반값 아파트는 여야 경쟁 속에 일사천리로 추진됐을 것이다. 선거에 눈이 먼 반값 수준의 야당과 청와대의 포퓰리즘이 가져왔을 불장난을 떠올리자면 아찔 하기만 하다.